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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란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최인훈의 광장을 통해서 유토피아가 있어야 할 곳은 어디인지 이야기 해본다.
소설 광장, 이상과 현실에 대한 이야기
안녕하십니까? 여러분은 유토피아의 라틴어 본뜻을 알고 계십니까? 유토피아(Utopia)의 유U는 없다는 뜻이고, 토피아topia는 장소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노플레이스(No Place) 즉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곳, 현실 세계가 아닌 이 세상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영국 작가 토마스 모어가 유토피아라는 책을 쓰면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영국은 사회 전반적으로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서 수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혼란한 시기에 타락한 세상을 개혁하려는 대안으로 토마스 모어는 유토피아를 썼던 것입니다. 물론 이상형에 대한 꿈은 비단 서양뿐만 아니라 동양에서도 오래전부터 있어왔습니다. 도연명이 말하는 무릉도원은 속세를 떠난 이상향의 모습입니다. 또한 장자가 말하는 무하유향도 이와 비슷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릉도원이나 무하유향도 서양의 유토피아처럼 지도나 GPS로서는 도저히 찾아갈 수 없는 곳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현실이 고달프고 각박하면 할수록 이런 이상형에 대한 꿈을 꾸어왔습니다. 만약 이런 꿈마저 꿀 수 없다면 현실은 얼마나 살아가기 힘들까요? 오늘은 한국 소설가 최인훈의 광장에 대해 말씀드리면서 현실과 이상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나 남한으로 내려온 최인훈은 법학을 공부하다 그만두고 작가가 됐습니다. 1950년대 말 단편 소설로 등단한 그는 1960년 그의 대표작인 광장을 발표합니다. 처음 발표한 뒤 다섯 번이나 계속 고쳐 쓴 걸로도 매우 유명합니다.
소설의 줄거리
소설의 배경은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과 직후입니다. 주인공 이명준은 서울에서 철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입니다. 그는 아버지의 친구 집에 얹혀 살면서 대학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북한에 살면서 가끔 대남방송에 등장하기 때문에 이명준은 경찰서에 불려가 곤욕을 치르기도 합니다. 이런 남한의 현실에 환멸을 느낀 그는 마침내 월북합니다. 남한이 싫어 월북한 이명준은 과연 행복할까요? 아닙니다. 이명준의 비판적인 눈에 비친 북한 사회는 사회주의의 공식적인 명령과 복종만 보일 뿐 활기차고 정의로운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즉 북한에도 그가 추구하는 진정한 삶의 광장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명준은 남한과 북한 그 어느 곳에서도 자신의 광장을 발견하지 못하고 허무주의자가 됩니다. 이런 와중에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이명준은 전쟁에 뛰어들게 됩니다. 역시 전쟁에서도 그는 새로운 삶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결국 포로가 되고 포로 송환 과정에서 남쪽이냐 북쪽이냐의 선택의 갈림길에 놓이게 됩니다. 이명준은 남쪽도 북쪽도 아닌 중립국 인도를 선택합니다. 이제 그가 나설 광장은 남쪽과 북쪽 어느 곳에도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명준은 중립국으로 지정된 인도로 가는 타고르 호에 오릅니다. 하지만 중립국에서도 자신의 행복을 결코 찾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 속에, 명준은 자신이 첫 번째 감시자로 생각하고, 자신이 쏘려던 갑판 위의 두 갈매기의 모습에서 은혜와 자신의 딸의 모습을 떠올리며 마지막 자유의 공간인 푸른 바다로 뛰어듭니다. 결국 그를 태운 배가 남중국해를 지나 항해하던 중 그는 갑자기 바다에 뛰어들어 자살하고 맙니다.
이 책이 주는 교훈, 주어진 현실을 사랑하라
줄거리만 들으면 결론이 참 허무하다 느껴지셨을 것입니다. 이 소설에서도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주인공 이명준은 유토피아의 세계를 추구하는 이상주의자라는 사실입니다. 유토피아를 추구하는 이상주의자인 주인공에게는 남한의 자유민주주의도, 북한의 사회주의도 문제가 많습니다. 그가 즐겨 사용하는 말을 빌려 말하자면 남한에는 광장만 있고 밀실이 없는 세계지만, 북한은 이와는 반대로 밀실만 있고 광장이 없는 세계입니다. 주인공이 추구하는 세계는 광장과 밀실이 함께 조화와 균형을 이루며 공존하는 세계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주인공 이명준이 남한도 북한도 아닌 제3의 중립국 인도를 선택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입니다. 또한 현명한 선택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그는 왜 자살이라는 극단적 방법을 택했을까요? 그것은 중립국 인도에도 그가 추구하는 세계는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는 이 세계에서 추구할 수 없는 것,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그런 곳을 찾아 헤맸던 셈입니다. 그렇다면 주인공은 처음부터 절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유토피아는 말 그대로 이 지구상에서는 도저히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완벽한 세상을 찾느라 그 어느 곳에도 정을 두지 못하고 떠돌이로 살아간 이명준이 주는 교훈은 주어진 현실을 사랑하라입니다. 완벽한 세상, 완벽한 사랑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내 마음속에 유토피아를 만들어보는 겁니다. 유토피아가 우리 마음속에 있다면 세상 어느 곳에 가도 그것이 모두 여러분의 천국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갖고 계십니까? 마음속 유토피아야말로 우리를 살게 하는 힘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