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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동양에서 받들어온 유교가 최근 들어 심심치 않게 비평의 도마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인륜이 지켜야 할 명분으로 인을 내세워 예의범절을 비롯한 형식을 중요시하는 유교는 실리를 중요시하는 요즘 시대와는 거리가 있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여러분이 자주 접할 수 없으셨을 중국 근대 문학의 고전 루쉰의 아큐정전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아큐정전의 저자 루쉰의 집필 목적
루쉰은 1881년 중국 저장성 사오싱이라는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루쉰은 필명이고 본명은 저우수런입니다. 22살 때 의사가 되려는 청운의 꿈을 품고 동양에서 개화 문명의 전초지인 일본으로 유학을 갑니다. 어느 날 학교에서 전쟁에 관한 슬라이드를 보던 중 화면 속에서 일본 군인이 러시아 첩자 노릇을 한 중국인을 살해하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동포가 처참하게 죽어가고 있는데도 팔짱을 낀 채 무감각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화면 속 중국인들의 모습을 보고 루쉰은 엄청난 충격을 받습니다. 루쉰은 육체의 질병을 고치는 일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국민성을 바로잡는 일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면서 당시에 중국이 쇠약하고 무능하게 된 원인으로 유교 사상과 질서를 지목했습니다. 현재 중국의 모든 문화는 주인에게 받드는 문화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희생으로 얻어지는 것이다 라며 루쉰은 소설을 통해 유교 원리를 풍자하고 비판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런 루쉰의 사상이 그대로 스며든 작품이 바로 아큐정전입니다. 아큐라는 인물의 인생과 죽음을 담고 있는 이 작품은 1921년 베이징에서 발행하던 신문에 처음 연재됐습니다. 이 작품이 발표되자 중국에서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독자들은 자기 자신이 혹 이 작품의 주인공 아큐가 아닌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 뒤 세계 각국으로 번역되었고, 프랑스 작가 로맹 롤랑은 무척 감명 깊은 작품이라고 평하기도 했습니다.
무능하지만 자존심만 강한 아큐
도대체 아큐는 어떤 인물일까요? 작품의 주인공 아큐는 최하층 신분의 날품팔이로 중국 구사회의 민중을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이름도 성도 없이 조씨 집안에 얹혀 살면서 그 집안의 허드렛 일을 하는 인물로 떠돌이 패의 한 사람입니다. 지극히 무능하고 우매하지만 자존심만은 강했습니다. 그래서 이웃 첸가의 아들이 서양식 학교에 다니고 일본 유학을 가며 변발도 잘라버리는 것을 보고 아큐는 그를 양놈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이 말이 그의 귀에 들어가 첸의 아들한테 지팡이로 얻어맞습니다. 또 한 번은 젊은 과부에게 수작을 걸다가 낭패를 당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큐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고는 일자리도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큐는 사람들의 이런 반응에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정신 승리법이라는 독특한 생활신조를 갖고 있기 때문인데요. 남한테 육체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온갖 굴욕과 학대를 받으면서도 사실은 정신적으로는 그들보다도 더 우월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저자 루쉰은 아큐의 이러한 태도야말로 오랫동안 유교 사상을 학습하여 자신도 모르게 내면화한 결과로 보았습니다. 여기저기 다른 지방을 떠돌던 아큐는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혁명당에 가입하기 후에 다시 마을로 돌아와 첸가의 아들을 찾아갑니다. 그런데 그날 밤 이웃 자오의 집이 괴한들의 습격을 당합니다. 평소 자신을 무시하던 자오에게 나쁜 감정이 있었던 아큐는 무척 기뻐합니다. 마을 사람들을 갑자기 마을로 돌아온 아큐를 자오의 집 습격범으로 지목합니다. 그는 변명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사형장으로 끌려가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총살당하여 사망합니다.
아큐정전이 주는 메시지, 지나친 자존심의 위험성
중국에서는 지금도 아큐라고 하는 부정확한 현실, 이 자기 기만적 태도, 타인보다 내가 우월하다는 자만 등을 떠올리고 이를 아큐 정신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아큐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이기도 합니다. 작가가 이 책을 통해 전달하는 핵심 메시지 중 하나는 지나친 자존심의 위험성입니다. 무능력하고 어리석음에도 불구하고 아큐는 강한 자존심 때문에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도움이나 조언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이러한 자존심은 그의 몰락으로 이어지며, 이는 부풀려진 자존심이 어떻게 개인의 결점을 보지 못하게 하고 개인적인 성장을 방해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저자는 겸손과 자기 인식이 개인의 발전과 성공에 매우 중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사회적 비판의 역할도 하며, 공덕과 능력보다 지위와 자존심을 중시하는 사회의 함정을 반영합니다. 저자는 아큐정전의 이야기를 통해 개인이 단지 자존심이나 지위 때문에 능력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권위나 영향력을 유지하게 만드는 사회적 규범을 비판합니다. 이러한 비판은 독자들이 그러한 규범에 의문을 제기하고 도전하도록 장려하며, 개인이 자기 인식이나 사회적 지위보다는 능력과 기여 정도에 따라 판단되고 보상받는 능력주의 사회로 발전해 나아갈 것을 촉구합니다.능력은 충분하지 않으면서 여기저기 참견하며 말로만 훈수를 두고 구체적인 대안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명분 만을 내세워 타인을 비웃고 비판하는 아큐 같은 태도를 우리는 경계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