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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19세기 미국의 문필가이며 철학자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살펴보겠습니다. 웰빙 열풍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육체적, 정신적 건강의 조화를 통해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을 추구하려는 사람들의 욕망 때문입니다. 고도로 발달한 산업화가 인간에게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준 반면 정신적 여유와 안정을 앗아간 면도 적지 않습니다. 현대 산업사회는 구조적으로 사람들에게 물질적 부를 강요하는 경향이 있어 사람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부를 축적하는 데 소비합니다. 따라서 물질적 부에 비해 정신 건강은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고, 심한 경우에는 정신적 공황으로까지 발전하기도 합니다.
헨리 데이비스 소로의 소박한 삶
메서추세츠 콩코드에서 태어난 소로는 고향에서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하버드대학교에 입학하여 20살 때 졸업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에 돌아와 일정한 직업 없이 빈둥거린 그는 마을 사람한테서 괴짜 또는 낙오자로 통했습니다. 이 무렵 대학에 다닌다는 것은 여간 큰 특권이 아니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면 으레 목사나 변호사, 교수 같은 전문 직종에 종사하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소로는 하버드를 졸업한 뒤에 고향 콩코드에 돌아와 가내 수공업으로 연필을 만들고 있던 아버지를 도와 연필을 만들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형과 함께 세운 사립 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래도 시간이 나면 마을 근처를 빈둥거리며 배회하기 일쑤였습니다. 1845년 7월 4일 콩코드 주민들은 폭죽을 터뜨리고 성조기를 흔들어대며 요란스럽게 독립기념일 축제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이렇게 축제 분위기에 한껏 들떠 있던 바로 이날 소로는 손수레에 초라한 보따리를 싣고 동네 근처 월든 호수가 있는 숲으로 돌아갑니다. 깨어 있는 삶을 살고 싶다. 삶의 본질적인 사실과 직면하고 싶다면서 호숫가에 손수 오두막을 짓고 농사를 지어 자급자족하면서 무려 2년여 동안 이곳에서 살았습니다. 이 경험을 담아 쓴 책이 바로 월든입니다.
월든의 주요 내용
소로가 문명사회를 박차고 나와 월든 호숫가에서 홀로 산 것은 그야말로 위대한 실험이요, 상징적 몸짓이었습니다. 급속히 사라져가는 소박하고 원시적인 농경생활로 수레바퀴를 돌려 놓으려고 했던 겁니다. 다시 말해서 발전과 진보를 신앙처럼 믿는 동시대 사람들에게 원시적 자연의 복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소로가 이 책에서 삶을 코너에 몰아넣고 싶었다고 밝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물질적 풍요와 경제적 성공을 삶의 최대 목표로 삼는 사람들에게 그는 소박하게 살아가라고 부르짖습니다. 실제로 작은 오두막집에 딱딱한 침대와 책상, 그리고 손님들을 위한 의자 3개만을 가지고 생활했습니다. 소로가 이렇게 문명을 떠나 자연에서 살려고 한 것은 이 무렵 미국인들이 문명의 이름으로 자연을 무참히 파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소로는 자신이 생각하는 경제 성장이란 자연을 내다 팔아 얻은 이익에 불과하다고 말했습니다. 이 무렵 미국은 대륙을 횡단하는 철도를 건설하고 곳곳에 공장을 세우는 등 산업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자연은 무참하게 파괴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더 근본적 이유는 거추장스러운 문명의 짐을 훌훌 벗어던지고 대지에 발을 디디고 소박하게 살 때 인간은 참다운 자아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소로가 실천에 옮긴 낭만적 개인주의나 자기 의존 정신은 이렇게 문명과 등을 돌리고 원초적 삶의 모습으로 돌아갈 때 비로소 가능했습니다. 소로는 여백이 있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합니다. 한 치의 여유도 없는 각박한 삶이 아니라 뒤를 돌아보고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는 넉넉한 삶 말입니다. 소로는 일기처럼 월든 호수의 사계절 매일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기록했습니다. 호수의 수심과 지도를 그려 측량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며 모든 호숫가에 서식하고 있는 갖가지 들짐승과 어류, 충, 나무, 풀 등을 관찰하며 자연에 눈과 귀를 그리고 마음을 기울입니다.
이 책의 교훈, 소박한 삶을 통한 참된 행복 발견
그가 이런 삶을 고집한 것은 월든의 첫머리에 내 이웃들을 깨울 수 있다면 새벽의 수탉처럼 홰에 서서 한껏 뽐내며 소리 지르고 싶다고 밝혔듯이, 동시대 미국인들을 깨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조선시대 선비 조식은 한낮에도 딸랑딸랑 종을 울리며 길거리를 걸어다녔고, 그리스 시대의 철인 디오니게스는 밝은 대낮에도 등불을 들고 다녔던 것처럼 말입니다. 소로는 월든의 결론 부분에서 사람들이 찬양하고 성공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삶은 단지 한 가지 종류의 삶에 지나지 않는다. 왜 우리는 다른 여러 종류의 삶을 희생하면서까지 하나의 삶을 과대평가하는 것일까라고 말합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은 현대인들에게 물질적 풍요와 경제적 성공을 넘는 삶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하게 합니다. 경제적 성공이 중요한 목표일 수 있지만, 소로는 단순한 삶, 자연과의 조화, 자아 성찰, 그리고 공동체와의 연대를 통해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경제적 성공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지만, 소로의 철학은 더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도록 도와줍니다. 월든을 통해 우리는 진정한 풍요와 만족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소로가 살던 시대의 가치관에서 보면 그는 분명히 낙오자이며 이단자였습니다. 19세기 중엽의 북소리가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새 시대의 북소리에 그리고 자기 내면의 북소리에 발맞춰 행진하던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는 한 종류의 삶에서는 실패했을지 모르지만 그 외의 다른 종류의 삶에서는 성공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느 북소리에 발을 맞추고 계십니까? 눈앞의 현실에서 잠시 눈을 들어 대자연을 바라보며 여러분만의 북소리를 들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