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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말 속담에 보러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속담으로 개처럼 멀어서 정승처럼 쓰라는 말도 있습니다. 서양 속담에는 끝이 좋으면 다 좋다고 합니다. 하나같이 결과가 과정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과연 결과만 좋으면 과정은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을까요? 오늘은 미국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위대한 개츠비

    위대한 개츠비의 저자와 당시 사회적 배경, 길 잃은 세대

    미네소타주 세인트폴에서 태어난 스콧 피츠제럴드는 명문 프린스턴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러나 학업이 부진하자 대학을 중퇴하고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합니다. 종전 후 그는 소설가로 변신해 1925년 위대한 개츠비를 출간합니다. 위대한 개츠비를 통해 피츠제럴드는 어니스트 헤밍웨이 윌리엄 포크너와 함께 현재 미국 소설의 삼총사로 불리게 됩니다. 특히 피츠제럴드는 제1차 세계대전 뒤 미국을 풍미한 재즈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재즈 시대란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웠지만 도덕적으로는 혼탁했던 미국의 1920년대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때의 미국인들은 비참한 전쟁을 겪고 난 뒤 허탈감에 빠져 삶의 의미를 잃고 정신적으로 무척 방황했습니다. 그래서 이 재즈 시대를 두고 흔히 길 잃은 세대라고도 부릅니다. 위대한 개츠비는 바로 이런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때는 1925년이었고, 뉴욕시는 광란의 20년대의 열광적인 에너지로 활기가 넘쳤습니다. 고층 빌딩이 하늘을 꿰뚫고 있었고, 재즈는 도시의 심장 박동이었고, 눈 깜짝할 사이에 부를 만들고 잃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났고, 미국은 과거의 상처를 뒤로하고 과잉과 풍요의 미래를 받아들이고 싶어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꿈과 환멸, 타락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광란의 20년대는 경제적 번영과 문화적 격변의 시기였지만, 또한 깊은 사회적 불평등과 도덕적 방향의 상실로 특징지어졌습니다. 제이 개츠비의 비극적인 최후는 공허한 꿈을 쫓는 것의 위험성과 속임수 위에 세워진 성공의 일시적 특성에 대한 경고의 이야기입니다.

    등장 인물의 공통점,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음

    가난한 육군 장교인 개츠비는 데이지라는 여성을 무척 사랑했습니다만 그의 부대가 유럽 전선으로 배치되면서 전쟁터로 떠나갑니다. 데이지는 개츠비가 가난한 데다 전쟁터에 나가 연락이 끊기자 돈 많은 청년 톰과 결혼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귀국한 개츠비는 데이지가 결혼한 사실을 알고 큰 충격에 빠집니다. 개츠비의 이웃이자 이 작품의 화자인 닉은 자신 같으면 데이지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며 지나간 과거는 반복할 수 없다고 개츠비에게 충고합니다. 그러나 개츠비는 자신은 모든 것을 옛날과 마찬가지로 돌려놓을 생각이다라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첫사랑 데이지라는 목적을 얻기 위해 개츠비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이 무렵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의 혼동과 충격에서 벗어나 1920년대 경제 성장에 따라 유례 없는 번영을 누렸습니다. 개츠비 역시 수정헌법 18조의 금주령을 이용해 조직폭력배, 밀수 업자들과 결탁하여 큰 돈을 벌게 됩니다. 그 돈으로 데이지를 되찾기 위해 그녀가 살고 있는 저택 맞은편에 궁궐 같은 저택을 구입한 뒤 혹시 그녀가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매주 성대한 파티를 엽니다. 결국 개츠비와 데이지는 재회하게 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데이지가 개츠비를 옆에 태우고 운전하던 중 남편 톰의 정부인 머틀을 사고로 죽게 합니다. 머틀의 남편 윌슨은 데이지와 같은 차에 타고 있던 개츠비가 일부러 자신의 아내를 죽인 것이라고 오해하고 이번에는 윌슨이 개츠비를 살해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아직도 자기 아내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한 개츠비를 제거하기 위해 톰이 방조한 측면도 있었습니다. 위대한 개츠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이처럼 자신의 이익과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즉흥적으로 살아가는 참으로 무책임한 사람들입니다.

    개츠비의 삶은 실패한 인생

    여기서 한번 위대한 개츠비라는 제목을 천천히 살펴보겠습니다. 작가는 왜 주인공 개츠비를 위대하다고 했을까요? 아무 목적 없이 삶을 낭비하는 톰이나 데이지 또는 조직 폭력배들과 비교해 보면 개츠비는 조금은 위대하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개츠비는 이미 남의 아내가 된 여성을 가로채려는 파렴치범이요, 누가 봐도 엄연히 실정법을 위반한 범죄자입니다. 개츠비의 장례식에는 단 3명만이 참석합니다. 개츠비의 아버지 닉, 그리고 개츠비가 주최한 파티에 참석했던 어떤 정신 나간 동네 사람입니다. 개츠비의 동업자는 물론이고 그가 일평생 사랑한 데이지조차 참석하지 않습니다. 작가는 주인공 개츠비에게 붙인 위대한이라는 형용사를 아이러니컬하게 즉 반어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릇된 목적, 즉 이미 유부녀가 된 첫 사랑 데이지만을 바라보고 그녀를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개츠비의 삶은 전혀 위대하지 않은 실패한 삶이라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이 소설이 출간된 지도 어느덧 90년이 가까워옵니다만, 이 작품의 배경은 오늘날 우리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물질적 성공이라는 목표를 향해 앞만 보고 달려가는 태도가 그러하고, 비인간적인 물질주의적 사고가 팽배하다는 점도 그러합니다. 사람들의 목적이 정신적 가치가 아닌 물질적인 것들로만 가득 차 있다는 점도 비슷합니다. 여러분은 삶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몇 cc 이상의 승용차를 타고 몇 평형 아파트에 살고 혹시 그런 것들로만 가득 차 있지는 않으십니까? 그리고 그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노라 다짐하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우리의 인생을 채우는 것은 어느 시점, 어느 순간에 내 모습이 아니라 하루하루라는 매일의 과정 속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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