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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는 미래를 보여주는 거울입니다. 서애 유성룡이 임진왜란을 겪으며 쓴 징비록, 이 징비록의 저자의 삶과 책의 주요 내용과 시사점을 살펴봄으로써 적절한 사후관리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징비록의 저자 유성룡
    서애 유성룡

    징비록의 지은이 서애 유성룡, 임진왜란 당시 정부의 사령탑

    7년 동안 계속된 임진왜란에서 조선이 마침내 승리를 거둔 원인이 어디에 있었을까? 이순신 장군의 지휘에 따라 전라도 곡창지대를 보호할 수 있었던 것이 흔히 그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로  손에 꼽습니다. 일본은 처음에는 군량미를 조선에서 자급자족할 생각이었지만 이렇게 이순신 장군이 곡창지대를 지키는 바람에 결국 식량 보급에서 크게 차질이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임진왜란에서 승리를 한 가장 큰 원인을 꼽으라면 역시 전쟁에 있어서 중앙정부의 판단능력과 체계적인 지휘시스템을 제외할 수 없습니다. 전쟁은 장수와 군사들이 하지만 그 승패는 중앙정부의 사령탑이 결정하는 법이니 말입니다. 오늘은 임진왜란 중 중앙정부의 컨트롤타워 구실을 한 서애 유성룡의 징비록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유성룡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이며 동인의 구성원이었습니다. 본관이 풍산인 그는 의성 출신으로서 황해도 관찰사인 유중령의 둘째 아들이었습니다. 퇴계 이황의 제자였고 성리학의 대가였습니다. 죽을 때까지 청렴하고 강직한 삶을 살아서 조선의 5대 명재상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인물입니다. 그는 광해군의 도움을 받으면서 뛰어난 두뇌와 판단력으로 피난 가운데 있는 임금을 보호하면서 관병과 의병들을 지휘했습니다. 더구나 형조정랑이었던 권율을 의주 목사에, 정읍현감이었던 이순신을 전라도 좌수사에 천거하기도 했습니다.

    징비록의 주요 내용, 난중일기와의 차이점

    징비록은 유성룡이 임진왜란을 몸소 겪으며 느낀 생각과 교훈을 적은 책입니다. 임진왜란과 전쟁 전후의 상황을 탐구하는 데 가장 귀중한 자료는 논쟁의 여지가 없이 이순신의 난중일기와 유성령의 징비록입니다. 이 두 책은 무관과 문관이었던 저자가 각각 서로 다른 입장에서 임진왜란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무척 재미있습니다.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무렵 이순신이 수군을 지휘하는 장소로서 바다에서 왜적과 싸웠다면 유성룡은 땅 위에서 영의정과 4도 도체찰사(都體察使 조선시대에 의정이 맡은 전시의 최고 군직)를 겸하여 군사와 전쟁을 지휘했습니다. 난중일기가 제목 그대로 이순신 장군이 왜란 중 일어난 사건을 일기 형태로 기록한 책이라면 징비록은 왜란이 끝난 뒤 유성룡이 고향에 돌아가서 차분한 마음으로 전쟁을 회고하며 쓴 책입니다. 그러므로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절박한 전쟁 상황을 묘사한 이순신의 책과는 달리 유성령의 기록은 전쟁 회고록의 성격을 지니어 역사적 시점이 조금 더 넓고 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유성룡은 임진왜란과 같은 끔찍한 비극을 또다시 겪지 않으려면 세 가지 교훈을 명심하라고 충고합니다. 첫째, 지도자가 정세를 잘못 판단하면 엄청난 큰일을 그르칠 수 있다. 둘째, 지도자가 국방을 잘 모르면 나라를 적국에게 넘겨 줄 수밖에 없다. 셋째, 전쟁 같은 큰일이 닥쳤을 때는 반드시 나라를 지원해 줄 만한 후원국이 있어야 한다. 더구나 임진왜란이 끝난 뒤 유성룡은 전쟁 수습 방안에 있어서도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주장을 펼치게 됩니다. 예를 들면 전쟁에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신분에 따라 상을 주고 천민의 신분에서 벗어나게 해 주며 부역과 세금을 면제해 주는 등의 포상제 등입니다. 뿐만 아니라 군사비의 지출을 최대한으로 절약하여 백성에게 공물 즉 궁중의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백성들이 상납한 물품을 나눠주는 것을 호소했고, 문벌에 관계없이 다양한 방면의 인재를 골고루 등용할 것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이 책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징비록의 핵심은 전쟁의 교훈과 반성에 있습니다. 유성룡은 전쟁 동안 조선 조정의 내부 분열과 무능함, 그리고 백성들의 고통을 직접 경험하면서, 이러한 참상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후세에 경각심을 주고자 했습니다. 그는 전쟁의 원인을 분석하고, 조선이 직면한 위기 상황에서의 문제점들을 냉철하게 평가하였습니다. 또한 전쟁 이후 복구 과정에서의 노력과 성과, 그리고 앞으로의 대비책에 대해 제언하고 있습니다. 유성룡은 전쟁의 참혹함을 통해 교훈을 얻고, 이를 바탕으로 국가의 안보와 백성들의 안녕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대비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징비록이라는 저작을 통해 후세에 큰 교훈을 남기며, 오늘날까지도 중요한 역사적 자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유성룡이 징비록에서 말하는 내용은 기업 경영에도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리더가 기업의 상황을 잘못 판단하면 자칫 기업 전체를 그르칠 수 있습니다. 아니 기업만 그르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속해 있는 나라 전체를 흔들 수도 있는 일입니다. 사건이 터지고 난 후 사후 관리는 어떻습니까? 급한 불을 껐으니 이제 다 됐다. 위기를 벗어났으니 다 잊어버리자 이렇게 생각하지는 않으십니까? 재발 방지를 위한 철저한 조사를 하고 이를 기록하는 일, 그리고 공을 세운 이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하는 일은 여러분 기업의 미래를 위해 과거의 유성룡이 보내는 메시지가 아닐까 싶은데, 징비란 이처럼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는 뜻입니다. 지금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리랴마는 다만 뒷날을 위하여 경계해야 할 것이기 때문에 이 책을 써둘 따름이다라는 유성룡의 말은 숙연한 기분마저 듭니다. 살면서 어떤 위기를 맞았을 때 우리는 후회를 합니다. 그때 내가 그러지 않았다면 지금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하고 말입니다. 회사에서 어떤 큰일이 일어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책임자를 찾아 잘못을 추궁하는 데에만 급급한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일은 이미 벌어졌고, 지금 와서 후회한들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다만 미래에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경계하는 것이 더 경제적인 해결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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